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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문제 총정리
다음에는 핵피해나 위력에 관련된 동영상이 없네요. 유튜브에 핵위력과 위험에 관한 동영상 먼저 보시조.
http://www.youtube.com/watch?v=7SY6CHwybuo
세계역사상 핵무기를 실제로 사용한 나라는 미국뿐입니다. 일본에 터트린 핵미사일로 일본은 초토화되고 항복을 선언합니다. 동영상에서 보셨다시피 핵무기는 인류의 최악의 발명품입니다. 수십 수천 수억만명의 목숨을 버튼하나로 빼앗아 버립니다. 수십년 전에 위협으로 느껴젓던 핵위기가 지금 대한민국 한반도내에 일어나고 있는 안보적 현실입니다.
그럼 한반도에 핵위기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아볼까요??
20년 동안 진행된 북핵 문제를 간추려 보면 일정한 패턴이 반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도발로 위기가 초래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각종 제재 조처를 취하다가 어느 순간 이를 접고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갑니다. 그러다 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상황이 되면 다시 위기가 조성되고, 제재와 대화 국면이 되풀이됩니다.
1차북핵위기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야기된 1차 북핵 위기가 그런 경우 입니다. 북한이 NPT 탈퇴 이후 미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핵 연료봉 추출을 강행하자 미국은 94년 6월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타격을 준비합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를 위한 3단계 작전계획을 검토하는 등 북한 공격은 초읽기에 들어갑니다. 다행히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돌파구를 마련함으로써 전쟁 일보 직전에서 북한 공격은 철회됐습니다.
미국이 공격을 포기한 데는 ‘군사적 정밀타격’이 전면전으로 확산될 경우 입게 될 엄청난 피해에 대한 부담도 작용했습니다. 당시 미국 국방부는 전면전이 일어나면 미군 5만2000명, 한국군 49만명에 민간인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됬습니다. 이후 미국과 북한은 대화를 통해 1994년 10월 북핵 동결과 북한 경수로 건설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2차북핵위기
북핵 위기 이후 10년 만인 2002년 조성된 2차 위기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북한은 2002년 말 미국이 대북 중유 지원을 중단하는 등 ‘제네바 합의’를 사실상 파기했다고 비난하며 핵 동결 조처 해제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2차 위기도 2003년 8월 시작된 6자회담을 통해 2005년 북핵 포기 등이 담긴 ‘9·19 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북핵 검증체제 구축을 둘러싼 이견 등으로 2008년 8월 북한이 ‘핵 불능화 중단 성명’을 발표한 이후 북핵 불능화 과정은 지금까지 교착상태입니다.
-1차핵실험
그 와중에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하였습니다. 핵실험의 규모는 TNT 1kt 규모로, 실험장소인 함경북도 풍계리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3.6의 지진파가 감지됐습니다.
미국의 국제 계좌 동결 압박에 시달리던 2006년 10월 9일 오전에 벌어졌습니다. 엿새 전 국제사회에 핵실험 계획을 밝혔지만 미국을 역공하기 위한 협상용 카드라는 관측이 많았습니다
-2차핵실험
2차 핵실험은 김정일 건강 악화설이 나돌던 2009년 5월 25일 실시됐습니다. 규모도 4kt으로 확대됐고, 플루토늄 원자 핵분열을 직접 일으킨 핵무기 실험으로 진행됐습니다. 당시 측정된 지진파는 1차 핵실험보다 강한 리히터 규모 4.5로, 핵실험 능력이 발전했음을 내보였습니다.
-3차핵실험
지난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3차 핵실험도 2차 핵실험의 과정을 답습했습니다. 2013년 2월12일 오전 11시 57분 50초 3차핵실험 북한 함북 길주군에서 규모 5.0의 인공지진이 감지됐다고 기상청이 발표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규모 5.0의 인공지진은 TNT 6~7kt을 폭파시킨 것과 같은 위력입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1945년 8월 6일미국이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떨어뜨린 원폭의 3분의 1 수준의 파괴력이다. 북한의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 3.9,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당시 4.5로서 이번 인공지진의 규모5.0은 지난 보다 큽니다.
2002년부터 모아온 고농축우라늄(HEU)으로 핵실험한다면 40kg의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해 핵무기를 양산한다면 '실질적 핵파워'국가가 됩니다.
1991년 한반도 비핵화선언 이후 미국은 주한미군 핵무기를 전량철수시킨 뒤 미군의 핵우산으로 '확장된 억지력'을 제공하지만 안보는 불안한 상태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은 항상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함께 실시됐습니다.
2006년 7월 5일 있었던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발사 석달만에 1차 핵실험을 했고, 2009년 4월 5일 광명성 2호를 발사한 다음달에 2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이번 3차 핵실험 역시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미사일로 규정된 은하 3호를 발사한 뒤 이뤄졌습니다.
<<출처>>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
출 처 : http://cfe.org/opinion/index.asp?cid=110600&idx=1360&pid=2
위키피디아-
'북핵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들' - 네이버 지식iN
2013북핵문제 심각성과 그 대안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
http://cfe.org/opinion/index.asp?cid=110600&idx=1360&pid=2
[출처] 북한의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 3.9, 2009년 5월 2차 핵실험 당시 4.5, 2013년 2월 핵실험시 5.0이다|작성자 까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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